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예로 부터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이뤄왔죠.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사회성은 어떻게 발현되고, 또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핀란드 철학자 라이모 투오멜라의 사회적 존재론을 통해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 점심 뭐 먹을까?”,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해”라고 말하며 ‘나’가 아닌 ‘우리’로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볼 때, 도대체 이 **’우리(We)’**라는 주체는 어떻게 성립되는 것일까요? 단순히 여러 명의 ‘나’가 모이면 저절로 ‘우리’가 되는 것일까요?
이 흥미롭고도 복잡한 질문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존재론(Social Ontology)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현대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핀란드 철학자, 라이모 투오멜라(Raimo Tuomela)입니다. 오늘은 그가 정립한 ‘집단지향성’과 ‘We-mode’ 개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존재로 기능하는지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1. 라이모 투오멜라는 누구인가?
라이모 투오멜라(1940-2020)는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의 명예 교수이자 뮌헨 대학교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연구를 수행한 학자입니다. 그는 초기에는 과학 철학을 연구했으나, 점차 인간의 행동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본질을 파구하는 사회적 존재론으로 연구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보통 핀란드 철학자라고 하면 대중적으로는 생소할 수 있지만, 투오멜라는 분석 철학계에서 존 설(John Searle), 마이클 브래트먼(Michael Bratman)과 함께 ‘집단 지향성(Collective Intentionality)’ 논의를 이끈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그의 연구는 단순히 철학에 머물지 않고 경제학, 사회학, 그리고 인공지능(AI)의 다중 에이전트 시스템 연구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 사회적 존재론(Social Ontology)이란?
본격적인 투오멜라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존재론’이라는 개념을 잡고 가야 합니다.
- 존재론(Ontology):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철학의 분과입니다.
- 사회적 존재론: “돈, 국가, 기업, 결혼과 같은 사회적 실체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묻습니다.
예를 들어, 5만 원권 지폐는 물리적으로는 종이 조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치 있는 화폐로 취급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것을 돈으로 인정하자는 ‘집단적인 약속’과 ‘태도’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투오멜라는 바로 이 지점, 즉 개인들의 마음이 모여 어떻게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내는지를 논리적으로 분석했습니다.
3. 투오멜라 철학의 핵심: ‘We-mode’와 ‘I-mode’
투오멜라 철학의 정수는 바로 집단적 행동을 설명하는 두 가지 모드, 즉 **’I-mode(나 모드)’**와 **’We-mode(우리 모드)’**의 구분입니다. 이 구분은 구글 애드센스가 좋아하는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의 핵심 소재가 됩니다.
3.1. I-mode (개인 모드)
I-mode는 집단 활동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그 동기와 이유가 철저히 개인적인 목표에 있는 상태입니다.
- 예시: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갑니다. 겉보기에는 함께 뛰는 집단행동 같지만, 각자는 “내가 젖지 않기 위해” 뛰는 것입니다. 옆 사람이 넘어지든 말든 내 목표(비 피하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 특징: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되며, 협력은 나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3.2. We-mode (우리 모드)
We-mode는 개인이 **’그룹의 일원’**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행동의 이유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것을 하기 위해서”가 됩니다.
- 예시: 축구 팀의 선수들이 경기를 합니다. 공격수가 골을 넣으려는 이유는 개인의 기록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팀의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 특징: ‘집단 의지(Group Will)’가 개인의 의지에 반영됩니다. 여기서는 상호 간의 헌신(Commitment)이 발생합니다. 내가 맡은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팀 전체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 의무감이 생깁니다.
투오멜라는 진정한 사회적 협력과 제도는 사람들이 We-mode로 사고할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4. 집단 지향성(Collective Intentionality)
핀란드 철학자 투오멜라가 천착한 또 다른 주제는 ‘집단 지향성’입니다. 지향성이란 마음이 무언가를 향하는 성질(믿음, 욕구, 의도 등)을 말합니다.
개인이 “나는 사과를 원해”라고 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를 원해”라고 할 때, 이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투오멜라는 이것이 신비로운 ‘집단 영혼’ 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특별한 형태의 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내가 “우리는 X를 할 것이다”라는 의도를 가지고, 너도 “우리는 X를 할 것이다”라는 의도를 가지며, 서로가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상호 간에 알고 믿을 때(Mutual Belief), 비로소 집단적 행위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이 정교한 논리적 분석 덕분에 사회과학은 모호함을 벗고 엄밀한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5. 투오멜라의 사상의 시사점
왜 지금 우리는 20세기의 핀란드 철학자에게 주목해야 할까요? 그의 이론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5.1. 인공지능(AI)과 로봇 윤리
최근 AI 연구에서는 여러 로봇이 협력하여 작업을 수행하는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 중요해졌습니다. 로봇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협력하려면, 투오멜라가 말한 We-mode와 유사한 알고리즘, 즉 “공동의 목표를 위해 나의 행동을 조율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그의 철학은 AI 설계의 논리적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5.2. 조직 문화와 리더십
기업이나 조직이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I-mode)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그 조직은 위기에 취약할 것입니다. 반면, 구성원들이 조직의 비전을 공유하고 We-mode로 일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투오멜라의 이론은 진정한 팀워크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5.3. 사회적 갈등의 해법
현대 사회의 많은 갈등은 지나친 개인주의(I-mode의 과잉)에서 비롯됩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하고 ‘우리’로서의 연대를 고민하는 투오멜라의 통찰은, 파편화된 사회를 치유하는 데 필요한 철학적 나침반이 될 수 있습니다.
6. ‘나’를 넘어 ‘우리’로서의 인간
라이모 투오멜라는 평생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이기적인 본성을 넘어 협력과 연대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 탐구했습니다. 그는 핀란드 철학자 특유의 냉철한 분석력으로, 따뜻한 공동체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우리”라는 단어 속에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마음의 작용이 숨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 문명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오늘날 당신은 어떤 모드로 살아가고 계신가요?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I-mode인가요, 아니면 공동체와 함께 호흡하는 We-mode인가요? 투오멜라의 질문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