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애덤 스미스보다 11년 앞서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를 알아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안데르스 쉬데니우스(Anders Chydenius, 1729-1803)핀란드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동시에 성직자, 정치가였으며, 핀란드의 애덤스미스라고 불리는 등 자유주의 사상을 펼쳤습니다. 지금부터 그의 사상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경제적 자유주의의 아버지’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1776년 《국부론》을 저술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꼽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보다 11년이나 앞선 1765년, 북유럽 핀란드에서 이미 자유 무역과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를 꿰뚫어 본 인물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 그 주인공은 바로 안데르스 쉬데니우스(Anders Chydenius, 1729-1803)입니다. 그는 18세기 핀란드의 성직자이자, 정치가였으며, 시대를 초월한 사상을 펼친 위대한 핀란드 철학자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북유럽의 애덤 스미스’라 불리는 그의 생애와 핵심적인 자유주의 사상을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1. 18세기 스웨덴 왕국의 핀란드
안데르스 쉬데니우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 스웨덴 왕국의 일부: 18세기 핀란드는 독립 국가가 아닌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주 무대 역시 스톡홀름의 스웨덴 의회(Riksdag of the Estates)였습니다.
- 계몽주의의 영향: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유럽 전역에 ‘계몽주의(Enlightenment)’ 사상이 퍼지던 때였습니다. 이성과 합리,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였죠.
- 성직자이자 정치가: 쉬데니우스는 핀란드 포흐얀마(Pohjanmaa) 지역의 루터교 성직자(목사)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성직자 신분으로 스웨덴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자신의 철학을 현실 정치에 실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2. 쉬데니우스의 경제 철학 : ‘핀란드의 애덤 스미스’
쉬데니우스가 위대한 핀란드 철학자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선구적인 경제 사상입니다. 그는 애덤 스미스보다 먼저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의 핵심을 간파했습니다.
2.1. 그의 저서《국가의 이익 (Den Nationnale Winsten)》 (1765)
그의 핵심 사상은 1765년에 발표한 소책자 《국가의 이익 (The National Gain)》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11년이나 빠릅니다.
- 중상주의(Mercantilism) 비판: 당시 유럽은 국가가 무역을 엄격히 통제하고 수출을 장려하며 수입을 억제하는 ‘중상주의’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스웨덴-핀란드 역시 마찬가지여서, 특정 도시에만 무역 독점권을 주는 정책(예: 스톡홀름 독점)을 펼쳤습니다.
- 자유가 곧 ‘국가의 이익’: 쉬데니우스는 이러한 정부의 간섭과 독점이 오히려 국가의 부를 갉아먹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국가 전체의 이익(The National Gain)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정확히 일치하는 통찰이었습니다.
2.2. 경쟁의 옹호와 자유 무역
쉬데니우스는 특히 핀란드 북부 도시들이 스톡홀름의 무역 독점 때문에 고통받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자연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노동과 근면함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의도했다. … 법률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만큼 부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 그는 자유로운 경쟁이야말로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며,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의 강력한 주장 덕분에, 핀란드의 여러 해안 도시들이 마침내 해외와 직접 무역할 수 있는 ‘항해권’을 획득하게 됩니다.
3. 시대를 초월한 사회 자유주의
쉬데니우스의 위대함은 경제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기본권’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18세기에 이미 주장한 선구자였습니다.
3.1. 세계 최초의 ‘언론 자유법’ (1766)
그의 가장 위대한 입법 성과는 1766년 스웨덴-핀란드에서 통과된 **’언론 자유법(Freedom of the Press Act)’**에 기여한 것입니다.
- 검열 철폐: 이 법안은 세계 최초로 헌법 수준에서 ‘사전 검열’을 철폐한 법률로 평가받습니다.
- 투명성과 공공성: 쉬데니우스는 정부와 관료의 부패를 막고 계몽된 시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정부 문서가 대중에게 공개되고(오늘날의 ‘정보공개청구권’)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입니다.
3.2. 노동자의 권리와 ‘자연권’
그는 성직자로서 가난한 노동자와 하인들의 편에 섰습니다.
- 노동의 자유: 당시 하인들은 주인의 허락 없이는 직장을 옮길 수도 없는 등 강력한 인신 구속에 묶여 있었습니다.
- 자연권 사상: 쉬데니우스는 존 로크(John Locke) 등의 자연권 사상에 영향을 받아,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하인들이 자유롭게 고용주를 선택하고 임금을 협상할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4. 빌헬름 스넬만, 폰 브리트, 힌티카 vs 쉬데니우스
- 쉬데니우스는 19세기 핀란드 민족 정체성을 확립한 요한 빌헬름 스넬만(Snellman)이나, 20세기 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거장인 폰 브리트(von Wright), 힌티카(Hintikka)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 그는 형이상학이나 논리학이 아닌, **’정치와 경제 현실’**을 파고든 실천적인 핀란드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가’라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5. 안데르스 쉬데니우스 철학의 현대적 의의
안데르스 쉬데니우스는 2004년 핀란드 공영방송(Yle)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핀란드인’ 100인 중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오늘날에도 깊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유산은 명확합니다.
- 애덤 스미스보다 앞서 경제적 자유주의의 원리를 설파했습니다.
- 세계 최초의 언론 자유법을 이끌어내며 표현의 자유와 정부 투명성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 오늘날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투명성, 언론 자유, 그리고 역동적인 시장 경제를 동시에 누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 밑바탕에는 250여 년 전, “자유가 곧 국가의 이익이다”라고 외쳤던 위대한 핀란드 철학자 안데르스 쉬데니우스의 선구적인 통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