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철학자 : 도덕 상대주의에 대하여-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

오늘은 핀란드 철학자 세번째 이야기 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옮음’에 대한 정의는 달라집니다.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Edvard Westermarck)는 “도덕은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도덕 상대주의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진화 심리학, 윤리학, 사회학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 20세기 초반에 “도덕은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혁명적인 주장을 펼친 한 핀란드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Edvard Westermarck, 1862-1939)입니다.

그의 ‘도덕 상대주의’ 사상은 당시 유럽 지성계를 뒤흔들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윤리학, 사회학, 그리고 진화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핀란드 철학자 베스테르마르크의 생애와 그의 핵심 사상인 ‘도덕 상대주의’를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1. 철학과 인류학의 경계사이에서 베스테르마르크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는 1862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자치령이었던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헬싱키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학문적 여정은 철학의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 철학에서 인류학으로: 그는 ‘도덕의 기원’이라는 철학적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당시 막 태동하던 사회학과 인류학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현지 조사의 선구자: 베스테르마르크는 책상에 앉아 사유하는 대신, 직접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수년간 모로코에 머물며 현지 부족들의 관습과 사회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 런던 정경대(LSE) 교수: 그의 이러한 경험적 연구는 영국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1907년부터 1930년까지 런던 정경대(LSE)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이처럼 그는 핀란드 철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인류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가진 독특한 인물이며, 그의 철학은 철저히 경험적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2. 도덕은 ‘감정’으로 부터

베스테르마르크 철학의 핵심은 저서 《도덕 감정의 기원과 발달》(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the Moral Ideas)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2.1. ‘객관적 도덕’에 대한 비판

  • 당시 서구 철학계는 칸트의 의무론이나 공리주의처럼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 원리를 찾는 데 몰두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스테르마르크는 이러한 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 그는 “이 행위는 옳다” 또는 “저 행위는 그르다”라는 명제가, “저 하늘은 파랗다”처럼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즉, 도덕은 이성(Reason)이 발견하는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2. 도덕의 기원 : ‘보복적 감정(Retributive Emotions)’

그렇다면 도덕은 어디에서 오는가? 베스테르마르크는 그 답을 인간의 **’감정(Emotion)’**에서 찾았습니다.

  • 도덕적 승인(Moral Approval): 타인의 친절한 행위가 나에게 이익을 줄 때 우리는 ‘감사함(Gratitude)’을 느낍니다. 이러한 긍정적 감정이 사회적으로 확장된 것이 ‘도덕적 승인’입니다.
  • 도덕적 분개(Moral Disapproval/Resentment): 타인의 해로운 행위가 나에게 피해를 줄 때 우리는 ‘분노(Anger)’와 ‘복수심’을 느낍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것이 ‘도덕적 분개’ 또는 ‘비난’입니다.

베스테르마르크에 따르면, 우리의 도덕적 신념은 이러한 ‘보복적 감정’이 진화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다듬어지고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된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2.3. ‘도덕 상대주의(Moral Relativism)’의 탄생

이러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도덕 상대주의’**로 이어집니다.

“도덕은 감정에 기반하며, 감정은 개인과 사회, 문화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도덕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다양한 문화권의 관습(특히 결혼, 처벌, 재산 관념)을 비교하며, 어떤 문화에서는 미덕으로 여겨지는 행위가 다른 문화에서는 심각한 악행으로 간주되는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했습니다. 이는 ‘도덕이란 결국 각 사회가 공유하는 감정의 표현일 뿐’이라는 그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했습니다.


3. 철학을 과학으로 증명하다 : 베스테르마르크 효과

  • 베스테르마르크의 이론이 단순한 사변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베스테르마르크 효과(Westermarck effect)’**입니다.

3.1. 프로이트를 반박한 베스테르마르크

그의 이론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 프로이트의 주장: 아이는 부모(특히 반대 성의 부모)에게 근친상간적 욕망을 느끼며, 사회는 이를 억압하기 위해 강력한 ‘근친상간 금기(Taboo)’를 만들어낸다.
  • 베스테르마르크의 주장: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아주 가까이에서 함께 자란’ 상대에게는 본능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성적 혐오(Sexual Aversion)’ 감정을 갖게 된다.

3.2. ‘베스테르마르크 효과’란?

  • 그는 자신의 인류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근친상간 금기가 ‘본능적 혐오감’이라는 감정의 결과물이지, 그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우리는 금기 때문에 근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금기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 이 ‘베스테르마르크 효과’는 훗날 이스라엘의 키부츠(공동육아) 연구, 대만의 민며느리(심부아) 연구 등 다양한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경험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도덕=감정’ 이론이 얼마나 강력한 설명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4. 다른 핀란드 철학자와의 비교: 폰 브리트

베스테르마르크의 업적은 20세기 중후반에 활약한 또 다른 위대한 핀란드 철학자, 예오리 헨리크 폰 브리트와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 베스테르마르크: ‘도덕의 기원’을 탐구하며 감정과 인류학에 주목한 경험주의적 윤리학자.
  • 폰 브리트: ‘도덕의 논리’를 탐구하며 ‘의무 논리’를 창시한 분석철학적 윤리학자.

이 두 거장의 존재는 20세기 핀란드 철학이 ‘경험’과 ‘논리’라는 두 축에서 모두 세계적인 수준의 성취를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5. 베스테르마르크 정리

  •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는 도덕의 신성한 장막을 걷어내고, 그 안에 숨겨진 인간의 진화론적, 감정적 뿌리를 드러낸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도덕’이라는 주제를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대표적인 핀란드 철학자입니다.
  • 그의 도덕 상대주의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식의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왜 특정한 도덕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문화와 감정을 가진 타인에 대해 더 깊은 공감과 관용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절대적인 옳음’을 내세우는 독단주의를 경계해야 할 이유를, 베스테르마르크는 이미 100여 년 전에 철학과 과학의 언어로 설파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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